유적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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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png 경암재(景巖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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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대구 북구 연경동 청석골)

 

경암재는 22세 자는 경임(景任) 또는 사여(士汝) 또 여온(汝溫)이며, 호는 육휴당(六休堂) 또는 태암(苔巖) 휘는 주()선생의 묘각(墓閣)이다

 

y2-2.jpg전계동 경창(全溪東慶昌) 문하(門下)에 종유(從遊)하였고 정한강 구(鄭寒岡 逑), 장여헌 현광(張旅軒 顯光), 서낙재 사원(徐樂齋 思遠), 제현(諸賢)과 도의교(道義交)로 지내더니 임진난(壬辰亂)이 일어나자 의분(義憤)을 참지 못하여 서낙재 사원(徐樂齋 思遠), 손모당 처눌(孫慕堂 處訥), 곽귀헌 재겸(郭槐軒 再謙), 채투암 몽연(蔡投巖 夢硯),박총관 충후(朴摠管 忠後), 이군위 종문(李軍威 宗文), 최만경(崔萬頃) 제공(諸公)과 뜻을 모아 의병(義兵)을 일으켜서 공사원(公事員)으로서 대장(大將)에 추대(推戴)되었다. 해안창(解顔倉) 점거왜병(占據倭兵)을 토벌(討伐)하여 왜수(倭首) 삼명(三名)과 적졸(賊卒) 백여급(百餘給)을 참괵(斬)하였고, 칠곡 팔거(漆谷 八)에서 삼전삼첩(三戰三捷)의 전공(戰功)을 세웠고, 전라도 장수(全羅道 長水)에서 수천 왜병(數千 倭兵)을 물리쳐서 초유사(招諭使)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과 체찰사(體察使) 한음 이덕형(漢陰 李德馨)에게 크게 장허(奬許)를 받았다. 난정후(亂靖後)에는 포천(褒薦)을 굳이 사양(辭讓)하고 산림(山林)에 돌아가서 한 독서사(讀書士)로서 대구향교(大邱鄕校)를 중건(重建)하고 각처(各處) 사원(祠院)을 보수(補修)하여 후진양성(後進養成)과 향학진흥(鄕學振興)에 힘을 다하였다.

 

명종(明宗) 11년 병진(1556년) 1월 7일생이며,

선조(宣祖) 37년 갑진(1604년) 2월 27일 48세로 졸하다.

 

묘(墓) :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 청석골 토원봉 계좌

배(配) : 영양 최씨(永陽 崔氏)

시제(時祭) : 음력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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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들이 모여 종사를 논의하는 태암회관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