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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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png 진락공부도탑(眞樂公浮屠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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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현의 부도탑(청평사))

 

淸平山 文殊院重修碑는 李의 長子 資玄 眞樂公은 1061(文宗15)年에 出生하였으며 容貌가 魁偉하고 聰明하며 敏捷하였다. 1083(文宗37)年 文科에 及第하여 1087(宣宗4)年 大樂署丞으로 在職했을 때에 1088年 喪妻로 벼슬을 버리고 臨津江을 건너갈 때에 다시는 서울을 밟지 않키로 盟誓하고 당시 慶雲山으로 入山 普賢院을 고치고 修道하면서 도둑도 없어지고 호랑이도 종족을 감추어 山이름은 淸平山으로 院이름은 文殊院으로 바꾸었다. 入山修道할 때에 科擧에 같이 급제한 郭與節度使가 詔命을 받들고 入闕을 권했을 때에 公은 사양하고 內臣들에게 命하여 金으로 수놓은 비단과 茶 香을 특별히 내리시고 入闕을 명하였으나 臨津江을 건널 때 마음을 저버리지 않으려고 詔命을 받들지 아니하였다.

 

1117(睿宗12)년 王이 손수 짓고 쓰신 詩를 公의 아우 資德 尙書에게 주어 임금이 행차하시는 南京으로 公을 나오기를 請하여 그해 8月에 뵈었을 때에 道德이 높은 老人을 여러해 思慕하였는데 臣下의 禮節로 보아서는 안된다 하고 宮殿 위에 절할 것을 명하고 임금께서도 절 하셨다. 임금께서 三角山 淸凉寺에 公을 머므르게하고 禪學의 敎理를 質問했을 때에 必要 1卷을 著述하여 올리고 돌아가겠다고 굳이 청하니 곧 茶 香 衣服을 내리시어 떠나는 길에 사랑을 베푸시고 王妃와 公主도 衣服을 膳物하는 禮를 하였다.

 

公은 1125年 4月 21日 申時에 入寂하였다. 文殊院重修碑의 碑文은 高麗의 名臣 金富轍이 짓고 글씨는 高麗때 名筆 弟子 大鑑國師 坦然이 쓰고 弟子 祖遠이 1130(仁宗8)년 碑를 세웠다. 特히 김부철은 공의 집안은 여러 세대에 걸쳐 임금의 외척으로 삼한의 으뜸가는 양반(三韓甲族)인데 공만이 홀로 티끌 밖에서 자유롭게 지나며 세속적인 귀찮은 일에 미치지 않았다. 인격과 덕망이 더욱 높으니 어찌 지식있는 사람들만이 칭찬하며 탄식할 뿐이겠는가 시골에서 농사짓는 백성들까지도 소문을 들은 사람이면 누구나 사랑하며 존경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