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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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png 환성정(喚惺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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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대구시 북구 서변동 881

 

환성정(喚惺亭)은 임진왜란(壬辰倭亂)(1592-1598)때 대구지방(大邱地方)에서 의병장(義兵將)으로 활약(活躍)한 이주(李)의 정각(亭閣)이며 이주(李)는 조선(朝鮮)의 학자(學者)이며 자(字)는 경임(景任), 호(號)는 육휴당, 태암(六休堂, 苔巖)이고, 당대 명유(當代 名儒) 정경세(鄭經世) 등(等)과 교유(交遊)하고 성리학(性理學)을 연구(硏究)했으며, 선조(宣祖) 25年(1592)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서사원(徐思遠)과 함께 창의병(倡義兵)을 모집(募集) 군량(軍糧)을 조달(調達)하고 초유사 김성일(金誠一)의 소모관(召募官)으로 있었으며 뒤이어 체찰사(體察使) 이덕형(李德馨)의 추천(推薦)으로 조정(朝廷)의 부르심을 받았으나 굳이 이를 사양(辭讓)하고 향리(鄕里)에 묻혀 학문(學問)에 전념(專念)했으며 서계서원(西溪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건물은 축대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굴도리집으로 전면어간(前面御間)과 좌측래문(左側來門)은 온돌이고 우측래문(右側來門)은 루(樓)마루로 높이 50㎝ 되는 화강석 장초석 위에 원주(圓柱)를 놓았으며 가구(架構)는 5량(樑)이다.

 

종(宗)마루는 사다리꼴 판대공으로 받쳐있고 팔작지붕이다. 환성정(喚惺亭) 현판은 대원군(大院君)의 친필(親筆)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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