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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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png 충재(琴忠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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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충재전경

(소재지:경북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 산12-1번지)

 

23세 자는 (장오)章五 휘는 (자운)自雲 선조(宣祖) 21년 무자(1588)생 가선대부(嘉善大夫)의 재실이다.

 

公의 6대조인 17세 진사공(進士公) 휘 송(松)께서 사촌형이신 호 학촌(鶴村) 휘 승원(承元)과 함께 조정의 어지러움에 벼슬에는 뜻을 두지않고, 서울에서 경북 성주 대동 으로 귀은(歸隱)하였다.(연산조에 많은 士林들이 서울을 떠났음) 5대후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당시 4세인 공은 모부인(母夫人) 청도김씨(淸道金氏)의 등에 엎혀 대구 성당동으로 이거하였다한다. 그 후손들이 혹 조상의 묘소를 유지보존(維持 保存)하기 위하여 지금도 대구 성당동에 많이 살기도하며, 혹 김천지방으로 이거하여 살기도 한다. 李씨 세보(世譜)에는 다만 품직(品爵)과 표덕(表德)과 졸 연월일만 기록되어 있을 뿐 생년월일과 등과(登科)한 시기는 역시 잃어서 기록되어있지 않다. 공의 후손들에게 구전하여오는 설에 의하면 공은 선조 21년(1588) 무자(戊子)에 나서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경북 성주에서 대구 성당동으로 모부인(母夫人)께서 공을 엎고 이거하였다고 한다.

 

헌종 10년 기유(1669) 8월 19일 卒(8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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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운의 묘와 묘비 

 

묘(墓)는 처음은 대구 감물천동(甘勿川洞) 공의 할머니 墓 오른 쪽 선좌(選坐)로 모셨으나, 1960연대말 경에 대구시 확장(擴張)으로 인해  경북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 산12-1번지 유좌(酉坐)로 이장(移葬)하였으며 후손들이 힘을 합쳐 금충재(琴忠齋)도  새로 지었다.

 

수비(竪碑)는 무신년(1968) 10월 하조(下潮)에 하였음

비문(碑文)은 문소(聞韶) 金東燮 撰    延安 李英達 書이다.

시제일(時祭日)음력 10월 둘째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