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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하시중 문충공 이(공수)선생 봉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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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대종회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7-12-04 09:57 조회1,2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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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049.gif 門下侍中 文忠公 李(公壽)先生 奉安文

(경기도 파주시 통일동산에 소재하는 고려통일대전 정전에 모신 다섯 분 할아버지 봉안문중  5세 문충공 휘 공수 할아버지 봉안문)

嗚呼! 先生이시어! 仁州의 故家요 檢校太尉 中書侍郞平章事 預의 아들이요 侍中 崔惟善의 外孫이로다. 自幼로 天稟이 聰明宏厚하고 勤儉勉學하였더니 일찍이 文科에 及第하였도다.

睿宗朝에 兵部侍郞으로 轉補되니 王이 軍卒 選拔을 委任하기를 무릇 十四年이나 되었으니 오직 그 適任者였도다. 그 후 工部尙書를 거쳐 仁宗이 卽位하매 檢校司徒 守司空 參知政事로 拔擢되었고, 中書侍郞平章事에 昇職하였는데, 때에 李資謙이 王을 逼迫하매 先生이 義擧하여 바로 잡았도다.

나라를 危機에서 救拯하였으니 어찌 그 功을 높이지 않으리요? 이내 推忠衛社同德功臣을 삼고 開府儀 同三司 門下侍中 上柱國을 除拜하도다. 先生이 朝廷에 있으매 임금이 그 忠直하고 勤儉함을 嘉尙하여 軍國의 大事는 모두 先生의 議論을 좇았도다.

風痹로 辭職表를 올렸으나 王이 그 舊德을 아끼어 쉽게 許諾하지 못하고 세 번 만에 겨우 優詔하여 許諾하시도다. 及卒에 王이 甚히  哀悼하여 一日間 輟朝하고 文忠이라 賜諡하였도다. 비록 當代에는 廟食을 얻지는 못하였으나 그 顯功을 생각하면 어찌  闡揚치 않으리요? 하늘의 뜻은 기다림에 있고, 사람의 마음은 막기 어렵도다. 이제 義를 崇尙하는 諸士의 議論이 齊發하여 드디어 皇都 南方 六十里許에 터를 잡아 數年 만에 저 巍然한 統一大殿을 세웠도다. 百萬姓裔는 이에 獻誠하고, 政府機關은 이에 協贊하였도다. 大殿은 四圍로 莊嚴하고, 史館은 階下에 重疊하도다.

드디어 古禮를 좇아 敢히 尊靈을 治國室에 奉安하고, 淨潔한 醴齊를 갖추어 恭敬히 靈前에 薦新하나이다. 바라옵건대 不昧하신 英靈이시어! 이에 降臨하사 永遠히 이에 平安을 누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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