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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거사 진락공 이(자현)선생 봉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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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대종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7-12-04 10:11 조회1,2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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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049.gif 淸平居士 眞樂公 李(資玄)先生 奉安文

(경기도 파주시 통일동산에 소재하는 고려통일대전 정전에 모신 다섯 분 할아버지 봉안문중  5세 진락공 휘 자현 할아버지 봉안문)

嗚呼! 先生이시어 仁州人으로 中樞院使 의(豈頁)의 아들이요. 門下侍中 中書令 章和公 子淵의 孫子로다. 容貌가 俊秀하며 天性이 淡白하였도다. 文宗때 文科에 올라 宣宗때 大樂署丞이 되었다가 뜻한 바가 있어 벼슬을 버리고 春川의 淸平山에 들어가 文殊院을 수리하고 있으면서 堂과 庵子를 10여채를 짓고, 堂을 聞性 庵子를 見性, 仙洞, 息庵이라 各各 이름하고 禪學을 닦았도다.


 

睿宗 12년 南京(지금의 서울)에서 임금을 만나 特別히 優待를 받았으며, 皇后와 公主로부터 衣服을 膳物받았도다. 仁宗의 禮遇가 또한 두터웠으며, 病으로 누우니 王이 御醫를 보내어 問病하고 겸하여 茶藥을 하사하고, 死後 眞樂이라 諡號하였도다. 著書로는 三角山 淸凉寺에 머물면서 先學의 敎理를 적은 「必要」1卷을 著述하여 王에게 올리고, 그밖에 「追和百藥公樂道詩」1卷, 「南遊詩」1卷, 「禪機語錄」1卷,「歌頌」1卷, 「布袋頌」1卷을 지었도다. 哀惜하도다. 名門大家에서 生長하여 王의 外戚으로 科擧에 及第하고 좋은 벼슬까지 올랐으니 그 將來가 이미 保障되었거늘 富貴를 헌신짝처럼 여기고 스스로 窮巷에 묻어 오직 心性을 닦고 弟子를 養成하는데 專心하였으니 어찌 知識人만이 稱讚하여 歎息할 뿐이겠는가?


 

마침내 沙門의 巨匠들이 모여들어 門下를 메웠으니 그 名望이 後世에 전하도다.

嗚呼 天運이여! 勝國이 屋舍한지 於焉 六百年이로되 聖忠들의 廟食은 아직도 겨를치 못하고 있도다. 하늘의 뜻은 기다림에 있고, 사람의 마음은 막기 어렵도다. 드디어 儒林의 의논이 齊發하여 數年만에 저 이 巍然한 統一大殿을 坡州洞天에 屹然(흘연)히 세웠도다. 이제 列聖을 좇아 歷代 名賢을 나란히 配祀하노니 貴業은 千秋에 不滅할 것이요. 香火는 萬世에 繼承하리로다.


 

드디어 高麗宣揚會 有司는 醴齊를 갖추어 敢히 尊靈을 文治室에 奉安하나이다. 바라옵건데 不昧하신 英靈이시어! 이에 降臨하사 이에 平安을 누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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