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거리
읽을거리

잊혀진 독립투사 이태준 선생을 아십니까?

페이지 정보

작성자 no_profile 대종회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9-03-02 13:58 조회1,901회 댓글0건

본문

잊혀진 독립투사 이태준 선생을 아십니까?

필자는 2007년 9월 몽골공화국 식량농업부장관(TERBISHDAGVA)의 초청으로 몽골 여러 곳을 둘러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수도 울란바토르 외곽에 위치한 국가영웅기념탑에 참배를 하게 됐는데, 기념탑 입구 맞은편에 우리 태극기가 게양되어있고, 한글로 된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초청 측의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기념탑 참배하고, 내려오는 길에 그곳에도 들릴 예정이라고 했다. 이곳 기념탑은 러시아 혁명 후 레닌 군대(적군)가 몽골을 청나라의 지배에서 해방을 시켜준 보답으로 세운 탑으로 수도에서 가장 뛰어난 위치에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어 몽골을 방문하는 국빈급 사절들의 필수참배코스로, 우리의 국립묘지 충혼탑과 같은 곳이 아닌가 생각되었고, 그 성스런 곳 입구에 우리나라와 유관한 그 무엇이 있다니 궁금증이 한층 더했다.
그 곳은 자랑스러운 우리 대한민국인 이태준 선생 기념공원과 기념관이 위치해있는 곳이었고, 2500여 평의 면적에 30평정도 되는 게르(몽골의 고유이동주택)에 여러가지 문헌, 자료가 전시되어있고 야외에는 선생의 유택(가묘)과 비석, 유허비 등이 들어서 있었다.
여러 자료를 둘러보는 순간 선생의 고향이 필자의 고향인 경남 함안 군북이라는 사실을 접하고 격한 감정에 쌓였다. 선생의 고향은 이곳에서 근 3만리나 떨어져 있는 한반도의 최남단에서 무슨 곡절이 있어 이곳까지 와서 살게 되었고 죽어서는 이곳에 묻히고, 또 얼마나 크나큰 업적이 있어 몽골사람들에게 추앙을 받아 성스런 장소에 묻히고 기념관을 조성한 배경에는 필경 큰 사연이 있어 보여 일행과 떨어져서 반나절 동안 꼼꼼히 살펴보았는데, 선생은 이조 말 1883년 11월 경남 함안 군북 명관리에서 인천이씨 이질 선생과 경주박씨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나 바로 경북 상주 모서 도안리로 이주하여 성장 후, 서울로 유학 1907년 세브란스 의학 전문학교(연세대 의과대학전신)를 2회 입학, 재학 중 도산 안창호 선생의 권유로 신민회에 가담, 항일 독립정신을 함양하여 민족진영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면서, 졸업을 하자마자 바로 중국으로 망명 남경에서 미국선교사가 세운 기독병원에서 의술을 펼치는 한편 상해임정의 요인들과 연계 독립운동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 되는 계기가 된다.
1915년 선생은 김규식[독립투사로 1948년 4김(김구, 김일성, 김규식, 김두봉)회담의 주역으로 6.25때 납북됨]선생의 권유로 몽골의 울란바토르로 이주 동의병원을 설립 당시 몽골에 창궐하던 매독(전 국민의 70%가 감염)을 치료하는 명의로 소문이 자자한 한편 마지막 황제인 “단바보그드 칸”의 주치의로 활약하는 한편, 파리강화회의, 모스크바 동방 평화 회의 등에 참가하는 한국 대표단의 김규식, 여운형, 한형권, 박헌영, 김단야 등의 여비와 교통편을 도맡아 놓고 제공하는 한편, 레닌 정부에서 제공하는 한국독립운동자금 2백만 루불(실제로는 4십만 루불의 금괴)을 수령 모스크바-울란바토르-베이징-상하이로 수송하는 임무를 수행했고 무장투쟁을 주장한 의열단의 김원봉, 윤세주 등에게 헝가리인 폭탄제조기술자 “미자르”를 보내주어 일본 황실경호실 폭탄투척, 김시현 열사 총독부 폭탄투척사건을 일으키게 하는데 뒷바라지를 하는 등의 눈부신 활약을 했다.
1921년 러시아의 레닌 혁명군(적군)에 패한 러시아의 구황실 군대((백군) 패잔병인 ‘운계르 베드그’ 부대가 울란바토르를 기습 점령하여 약탈을 자행, 선생도 그의 병원에서 체포 당해 조사를 하던 중 몽골인민들과 고위층에게 엄청난 신뢰와 존경을 받고 있는 점과 일본에 반대하여 독립투쟁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을 문제 삼아 만주의 관동군에 넘기기로 작정했으나(백군 러시아는 일본에 매우 우호적이었다) 갑자기 전세가 불리해지자 1921년 3월 학살하고 말았다. 이때에 선생의 나이 39세로 부인인 우사(김규식)선생의 매씨인 김은식 여사와 두 딸을 두고 이역 몽골초원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선생의 위대한 업적은 잊혀진 역사 속으로 묻혀 갔으나, 1993년 모교인 연세대학 세브란스 병원의 의료진들이 의료봉사 차 몽골을 방문하던 길에 선생의 흔적이 발굴되어 선생의 위대한 일생을 재조명하기로 이르렀고, 오늘날 몽골은 국가 선호도에서 대한민국이 50%가 넘는 압도적 1위인 나라이고 인구 90만인 울란바토르 시내에는 한국식당이 70여 곳이 성업 중이고, 한국식당은 고급사교장으로 현지인들에게는 큰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몽골 국민들에게는 대한민국은 가장 소중한 우방으로써 교역, 문화, 자본, 기술 등 다방면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90년 전에 이룩한 선생의 업적에 바탕을 두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몽골의 이태준 선생 기념관은 현재 가건물로 선생과 인연이 있는 연세대, 출생지 함안군, 성장지 상주시, 인천이씨종친회, 독립기념관, 광복회, 임시정부 기념사업회 등에서 잘 협력해서 반듯한 기념관과 기념공원의 정비사업이 한시바삐 이루어져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선생에 대한 도리를 다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후세인 우리 모두의 책무가 아닌가 한다.

오 길석
(사)조국통일 불교협회 경남대표
지역 근현대사 연구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