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조

 시조(始祖) 이허겸(李許謙)

 

득성조(得姓祖) 이허기(李許奇)께서 소성부(邵城府)=(仁川)의 동쪽 소래산(蘇來山) 아래에 거주했으며 휘(諱=이름) 검(儉)과 파(波)와 귀(貴)와 준(俊)은 대대(代代)로 신라의 대관(大官)이 되어 소성백(邵城伯)을 습봉(襲封)하였고 그로부터 선대(先代)의 어른들께서 인천지방에 세거하면서 토호문신세력(土豪文臣勢力)으로써 복록가문의 영달(榮達)을 누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득성조로부터 10세(世)에 내려와 이허겸공(李許謙公)을 1세조(世祖)로 하여 인천이씨 세보(世譜)릐 본관조(本貫祖)로 삼았으며, 이 분이 뒷날 증.상서좌복야.상주국.소성현.개국후(贈.尙書左僕射.上柱國.邵城縣.開國侯)에 추증된 시조(始祖)할아버님이며 이때가 1024년(고려 현종15년)이다.

 

이허겸묘(李許謙墓)

 

위  치: 인천광역시 연수구 연수2동 583-1

시  대: 고려초기(약천년이나되었다)

이허겸의 묘소는 연수동에 있는데 예날에는 간치도(看雉島) 또는 묘소의 섬이 바다 한가운데 있어서 물위에 떠 있는 연꽃과 같다하여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주변의 바다를 메구어 아파트가 크게 들어서고 묘 역 주변을 큰 공원으로 조성되었으며 후손들이 이허겸의 재실인 원인재(源仁齋)를 묘소 옆으로 이건(移建) 증축 하였고 당국에서는 문화재로 지정하였으며 이곳의 인천 지하철 역이름도 원인재 역으로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인천 시민들은 이곳을 충,효(忠,孝)의 수신도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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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공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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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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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공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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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공신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