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헌 및 봉안고유문

 서하집 국역본 봉헌고유문

 

일시 : 단기 4336년 4월 13일 (음력 3월 12일) 11시

장소 :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단원리 쌍명재

 

계미년 3월 12일에 예천임공(醴泉林公) 춘(椿) 서하(西河) 선생 후손 영인(永仁)은 삼가 쌍명재 인천이공 인로 미수(雙明齋 仁川李公 仁老 眉叟)선생 춘향재단에 고유하고 서하집 국역본(西河集 國譯本)을 봉헌하고자 합니다.

 

금일 고려조(高麗朝) 대유학자(大儒學者)이시고 대문장가(大文章家)이신 쌍명재 인천이공 인로 미수 선생님 재단아래 부복하고 공(公)과 서하공(西河公) 두분의 우정(友情)을 상기하자니 북받치는 감정을 누를길 없습니다. 공에서는 저희 선조께 베풀어 주신 은혜(恩惠)는 영원히 백골난망(白骨難忘)이옵니다. 난세(亂世)에도 불구하시고 공께서 서하공의 글을 모으시고 편집하시어 서하집(西河集)이라고 이름을 붙이신지가 780여년전의 일이었습니다.

 

이 귀중한 자료가 오늘날까지 온전하게 전수되고 있는 것은 오로지 공의 염원이 세세 년년 이어지고 있슴입니다. 지금 고려시대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서하집을 통해서 800년 전의 세상을 되돌려 보고 있습니다. 수년전에 중앙대하교 진성규(秦星圭) 교수와 동아대학교 박유리(朴有里) 교수에 의해서 서하집 국역작업이 이루어져습니다.

 

서하공께서는 포의(布衣)로서 젊은 년세에 애석하게도 세상을 떠나셨지만 공과 같은 휼륭한 분을 막역지우(莫逆之友)로 두셨기에 수많은 보살핌과 은혜를 입었고 많은 글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저희 예천임문(醴泉林門)에서는 태산(泰山)보다 더 큰 공의 은혜에 언제나 감사하면서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공의 후손들과는 그 예날 공과 서하공께서 나누신 막역한 우정(友情)과 같이 교유(交遊)를 돈독히 하겠습니다. 그 동안 정성이 부족하여 예(禮)를 갖추지 못해서 죄송스러움이 넘쳐납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나 금일 본래 서하집의 주인이신 쌍명재 인천이공 인로 미수 선생님 재단에 서하집 국역본을 바치옵니다. 기꺼이 받아주옵소서.

예천임씨대종회 회장 대행 임영인

  

 

 쌍명재 이인로 고려통일대전 봉안문

 

오호! 선생은 고려조 3대 가문의 하나인 인천인(仁川人)으로 개국 때부터 대대로 높은 관직을 지내왔도다. 그의 고조 자상(子祥)은 상서우복야에 중용되셨고, 증조 오(䫨)는 예종조에 평장사를, 조부 언림(彦林)은 의종조에 공부상서 우복야를 지내셨도다. 그리고 명종조에 좌상시를 지내신 백선(伯仙)의 아들이로다.

선생은 파한집에서 그의 가문을「나의 선조는 문장으로 세세에 이어와 홍지(紅紙)를 전해온 것이 이미 8장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도다. 선생은 의종6년(1152)에 태어나서 고종7년(1220)에 돌아가셨도다. 그의 초휘는 득옥(得玉)이고 자는 미수(眉叟)이며, 호는 쌍명재(雙明齋)이며 이 외에도 청련(靑蓮)과 와도헌(臥陶軒)이라는 호가 있도다.

 

선생은 고려 명종10년(1180년)에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명종12년(1182년)에 금나라 하정사행에 서장관으로 참여하였으며, 그 후 한림원과 고원에 보직되어 14년간 왕명을 부연하는 사소를 담당하였도다. 최충헌 집정하의 신종 연간에는 고원에서 예부원외랑으로 천직되었고, 신종7년(1204년)에는 맹성수령에 임명되었도다. 당시 최충헌의 집에 여러번 초대되어 당대의 문사 이규보(李奎報) 등과 더불어 시를 지었으며, 최당(崔讜)형제 중심의 기노회(耆老會)에 참석하여 시문을 지어서 문명을 드날렸도다. 고종 초에는 비서감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가 되었으며 고종7년(1220년)에는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에 올랐도다.

 

한림원에 보임되어 조칙을 짓는 여가마다 시사를 짓되 막힘이 없었으므로 복고 (腹藁)의 칭송을 들었으며, 그 시대의 대표적인 문인들인 임춘, 오세재, 조통, 황 보항, 함순, 이담지 등과 죽림고회(竹林高會)를 이루고 주도하였도다. 선생은 시창 작의 대가로 은대집(銀臺集), 쌍명재집(雙明齋集), 파한집(破閑集), 서하선생집(西 河先生集)을 저술하였고 삼한시귀감, 동문선, 대동시 , 보한집 등에 많은 창작시 가 실려 있도다. 특히 파한집은 그의 아들 세황이 기장현감으로 있을 때 그의 유 고를 50년 간 보관하다가 안렴사 태원왕공의 후원으로 원종원년에 파한집 3권을 간행하여 이후 800년간 전해오고 있는데 이는 고려사와 당시 학문과 사상을 연 구하는데 있어 귀중한 국보급 시집이 되었도다.

 

또한 그는 한시론(漢詩論)의 대가로서 이규보의 신의론(新意論)에 대한 용사론(用事論)을 주창한 대학자였도다. 그 영명(令名)은 천추에 유전하고 그 문풍(文風)은 만세에 유방하리로다. 이제 고려선양회 유사는 정결한 예제를 갖추어 감히 존령을 고려통일대전(高麗統一大殿) 문치실(文治室)에 봉안하나이다. 이에 강림하사 영원히 이에 명인(明禋)을 흠격(歆格)하소서.

 

 

 파한집 역주본 봉헌고유문

 

2014년 갑오 양력 4월 13일 인천이씨 쌍명재(雙明齋) 인로(仁老) 할아버지 후손 정욱은 삼가 선조님 춘향제단에 고유하고 파한집(破閑集) 역주본(譯註本)을 봉헌하고자 합니다. 금일 할아버지께 올리는 파한집 역주본은 최근 2012년과 2013년에 발간된 신간 4본입니다.

 

첫 번째 역주본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구인환 교수가 2012년 10월에 발간한 역주본 증보판입니다. 그는 서문에서 파한집은 우리나라 한시(漢詩)에서 없어서는 안 될 서적이고 고려사(高麗史) 연구에 귀중한 저서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역주본은 고려대학교 문과대학장 박성규(朴性奎) 교수가 2012년 11월에 발간하였습니다. 박 교수는 이 책 서문에서 파한집은 우리나라 문학사(文學史)이자 문학비평서라고 높이 받들고 있습니다.

 

세 번째 역주본은 중학생이 보는 파한집이라는 서명으로 한국교원대학교 성낙수 교수에 의하여 2012년 4월에 간행되었습니다. 특히 학생들을 위한 파한집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간되었고 연세대학교에서 추천도서로 지정되었습니다.

 

네 번째로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에서 2013년 1월에 파한집 역주본을 발간하였습니다.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이진한(李鎭漢) 교수와 8명의 대학원 연구원들이 전문적인 연구와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완성한 것입니다. 고려대학교에서는 가장 정확한 파한집 역주서를 만들기 위해 대학원의 고려시대 전공자들이 팀을 만들어 2009년 초부터 파한집 강독을 시작하였다고 이 책 서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이들은 매주 모여서 할아버지께서 쓰시고 세황(世黃) 아드님이 편찬하신 파한집 원문을 번역하고 방대한 관련자료를 조사 연구하여 주석을 달아 새로운 역주서를 만드는 일에 몰두하여 4년간의 노력 끝에 2013년 1월에 완성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 대학 교수와 선학들이 선조님의 파한집 역주본을 수차례 발간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발간된 역주본 중 가장 우수한 역주본이 이번에 발간되었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이처럼 할아버지께서 남기신 파한집이 우리나라 최고 명문대학인 서울대학교, 한국교원대학교,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의 교수들에 의하여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있으며 또한 종전보다 더 높은 학문수준으로 역주본이 발간되고 있습니다. 저희 후손들은 이를 무한한 영광과 크나큰 자랑으로 생각하면서 이 역주본들을 할아버지 제단에 바치옵니다. 기꺼이 받아 주옵소서

 

인천이씨 쌍명재공 인로(仁老) 할아버지

20대손 정욱(廷旭) 올림